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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남일 예비역준장과 엔케이 박윤소회장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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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산일보 2009년 5월 16일자

이남일 예비역 준장과 ㈜NK 박윤소 회장
’장군이 된 중령님’과 ’초급 장교’


이남일 예비역 준장과 ㈜NK 박윤소 회장 
 박윤소 ㈜NK 회장이 이남일 준장의 사진을 들고 회상에 잠기고 있다.


짧은 만남이었지만 여운은 길었다.
㈜NK를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선박 소방 방재 시스템 회사로 키운 박윤소(68) 회장은
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’인생의 스승’으로 군 복무 시절의 한 상관을 꼽았다. 군수사 종합정비창장을
마지막으로 예편한 이남일(80) 예비역 준장이다. 같이 근무한 기간은 1년6개월에 불과했지만
이 장군은 수십년 동안 박 회장의 ’인생 사표’였다.
한결같이 정진하던 ’나의 스승’
두 사람의 인연은 박 회장이 지난 1966년 ROTC 출신 초급 장교로 육군 모 보급부대에 근무할 때
시작됐다.
박 회장은 "당시 중령으로 부대를 책임지고 있던 이 장군은 여러 모로 특별한 점이 많았다"고
회상했다. 한국 전쟁 당시 사병으로 참전했다가 고급 장교가 된 이 장군의 이력부터가 유별났다.

성품도 ’성실’ 그 자체였다고 한다. 박 회장은 "이 장군은 미국 병기학교와 동아대 경영대학원에서
일생동안 끊임없이 공부하고, 근무 중에도 의미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"고 말했다. 그의 이런
성실함은 사병 출신으로 ’별’을 다는 입지전의 밑거름이 됐다.

이 때부터 박 회장은 ’근면 성실’을 삶의 지표로 삼았다.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1시가 넘도록 일에
전념했다. 일생 동안 공부의 끊도 놓지 않고 있다. 5년전에는 적지 않은 나이에 부산대에서 공학박사
학위를 땄다.

박 회장은 "이 장군의 성실성은 특히 사람을 대할 때 빛났다"면서 "상급자나 부하, 심지어 퇴근 후
가족을 만날 때도 세수를 다시 하고 옷 매무새를 고친 뒤에야 문을 나섰다"고 말했다. 작은 것이라도
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진심이 우러나오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. 그래서 박 회장도 몸
가짐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.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단정한 모습에 선비의 기품이 묻어난다는
말을 자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.

박 회장은 "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장군이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은 쪽지나 편지를 자주
써 감동을 주곤 했다는 점이다"고 말했다.

실제 박 회장은 편지로 진심을 전달하는 법을 배워 회사를 기사회생 시킨 적이 있다. 15년전
한 직원의 실수로 거래처로부터 신용을 잃고 회사가 문닫을 위기에 처했는데, 간절한 편지로 거래처
담당자를 설득시킨 적이 있다는 것이다.

박 회장은 최근 이미 타계한 것으로 생각했던 이 장군을 어렵게 찾았다. 그러나 "이 장군이
고령에다 건강도 좋지 않아 대화 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"면서 너무 늦은 재회를 안타까워했다. 이남일 예비역 준장과 ㈜NK 박윤소 회장 
 박윤소 ㈜NK 회장이 이남일 준장의 사진을 들고 회상에 잠기고 있다.